화창한 일요일.
반쯤 가린 블라인드 사이로 쏟아지는 빛의 화살은 이리저리 튕기어 방안 구석구석에 빛을 만들었다.
따듯한 날씨와 부드러운 시트는 날 침대 바깥으로 나가는걸 허용하지 않고 있었기에,
지금 시간이 얼마나 된지도 알 수 없을정도로 늘어져 있던 상태였다.
'일어나기 싫다아...'
마음과 몸의 이해일치.
머릿속에선 어서 일어나, 오랜만의 편안한 휴일을 겨우 잠따위로 때울참이냐며 화를 내고 있었지만,
2대1 다수결의 원칙하에 침대속을 계속 뒹굴겠다는걸로 결정.
'역시 사회인은 휴일의 늘어짐은 당연한거야.'
머릿속을 납득시키기위한 마음의 주장. 다수결의 힘은 위대하다고 생각하며 뒹굴기 시작할때,
마음의 주장을 단박에 뒤엎을 수 있는 감촉이 내 온몸에 느껴졌다.
오랜만의 해방감을 느끼고자, 기분좋게 누드로 잠을 자야겠다며 잠자리에 누운게 어젯밤.
온난화로 인해 6월이 여름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시트가 땀에 젖었다고 하기엔 이상하게 젖어있다.
에어컨으로 인해 식은건지 서늘하고, 축축하며, 무언가가 마른듯한 딱딱함까지.
'어제 꿈의 영향인가...'
일과 생활의 피로를 벗어버리자는 기분으로 목욕을 끝내고 '오늘은 누드로 자볼까' 하는 생각과 함께
침대속을 들어가서인지 모르나 꿈에서 조차 내 안의 모든것이 몸을 빠져나간 기분이 들었다.
사정에 가까운 쾌감이 꿈에서 전신을 훑고, 부드럽고 포근한 감촉이 내 몸을 뒤덮었던 기분만이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았을뿐, 꿈의 내용은 쾌감에 밀려 지워졌다는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설마 그런건 아니겠지...'
아무리 기분이 좋았다해도, 침대가 소변으로 얼룩져있다는건 현실로 받아들이긴 싫은게 당연하다.
평안하고 포근한 기분에, 그동안의 피로가 싹 사라진 기분이었는데
얼마 남지 않은 휴일의 시간을 고작 세계전도가 그려진 침대시트 빨래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기껏 날려버린 피로가 어깨위로 다시 날아오는 것 아닌가.
'아 대체 얼마나 젖은거야...'
침대를 빠져나오고 이제야 방안의 풍경을 눈안에 담는다.
일어나기 싫다는 일념하에 눈 뜨자마자 다시 감고 뒹굴거렸으니, 오늘 처음 보는 현실의 모습인 것.
현기증이 났다. 피곤해서 그런게 아니다.
분명 잠들기 직전까지만해도 내 집안이었는데,
어제와 달라진 방안의 모습.
붉게 물든 침대끝자락엔 전라의 여성이 있었다.
상반신을 침대에 반쯤 걸쳐져있는 그 여성은 온몸이 칼에 베인 상처로 도배가 되어있었으며
침대부터 방바닥까지 피가 반쯤 굳어진 상태였다.
침대에서 내려서기위해 발을 바닥에 내려놓자 쩌억하는 소리와 함께
기분나쁜 감촉만이 발에 느껴진다.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경찰에 신고해야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않았다.
마치 TV에서 보던 범죄재연드라마의 현장을 바라보는 제3자의 시선같은 기분이었다.
내 방에 죽어 있는 이 여잔 누구인가.
일단 그것부터 알고 싶었다. 다가가서 얼굴을 바라본다.
죽어 있는 그녀는 자해의 흔적에 비해 웃고 있는 표정으로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여자인거 확실했다. 왠 여자가 모르는 남자 앞에서 자해하고 죽어있다니.
제정신일리가 없다. 온몸을 난도질 해놓고서 웃고 있는 여자가 세상 어디있을까.
그리고 그녀가 자해에 사용했을법한 흉기가 눈에 들어왔다.
주방용 부엌칼. 마침 요전에 돼지고기가 잘 안썰리길래 잘 갈아놓은 하나뿐인 내 부엌칼.
그 부엌칼을 한손으로 꼭쥐고 있는 그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본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내방은 어떻게 들어온 걸까.
어디로 들어왔길래 작은소리에도 민감한 내가 눈치도 못채고 자고 있었을까.
다시 한번 그녀를 천천히 바라봤다.
손에 손톱이 없었다.
발톱도 모조리 빠져있었다.
시계는 오전 11시를 가르키고, 일요일을 시작하게하던 스테레오 오디오가 음악을 재생한다.
간단한 토스트와 커피를 먹으며 듣던 음악.
글루미 선데이.
오늘은 음악대로의 일요일이다.
이글루스 가든 - 이글루 소설가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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